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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과 창의적 사유의 모태 공간 - 최한선
작성일 : 2021-05-15     조회 : 220

누정과 창의적 사유의 모태 공간

  

최한선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hschmoon@hanmail.net

 

1. 누정의 개념

누정(樓亭)이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가리키는 용어로 누각(樓閣), 정자(亭子), 정사(亭榭), 누대(樓臺), 대사(臺榭), 모정(茅亭) 등의 용어가 두루 쓰였다. 누정의 일반적인 의미는 피서(避暑)와 유락(遊樂), 그리고 시작(詩作)활동과 강학(講學) 및 산수(山水) 경관(景觀)의 조망(眺望) 등을 위하여 산수가 아름다운 장소에 건립한 간단한 건축물을 말한다.

 

2. 남도와 누정

우리 남도는 누정의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누정은 전라도 천년의 역사와 문화역량을 축적하는데 일정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르기를 조선 중종(中宗) 시절, 전국의 누정은 800여 개로서 그 중 400여 개가 영남과 호남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은 누정 건립과 출입의 주체들을 고려할 때, 이들 지역은 선비 문화가 다른 지역 보다도 앞서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거니와, 지금도 이들 곳곳에서 풍겨나는 유풍(儒風)의 향기는 여느 지역과 다름이 분명하다.

 

3. 누정의 건립 배경

남도 누정 건립 배경은 먼저 고려 말 조선 개국에 반대하다가 낯선 남도 땅으로 유배(流配)를 당한 선비들의 누정 공간 건립에 따른다. 그들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자 남도 승경지에 누정을 건립하고, 도의(道義) 강마(講磨)와 후진을 양성 했다. 여기에는 담양 고서면 분향리, 금현리 등에 소재한 창녕 조씨 문중 관련 여러 누정이 그 대표이다.

다른 하나는 자발적 의지로 남도에 내려온 낙남(落南) 객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유배(流配)객이 건립한 누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누정 건립의 경제적 지원자는 남도 지역 토착 향반가(鄕班家)였음은 두말을 요치 않는다. 이는 곧 조선의 개국이 명분 없는 역성혁명 곧 쿠테타(coup)라고 여기고,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 고려 선비의 자발적 낙남(落南)과 이후 수양대군 왕위찬탈(1453)의 부당함에 항거함은 물론 무오사화(1498) 등 잇단 사화 등으로 의리와 명분이 자취를 감춘 데 분노한 절의파(節義派), 명분파(名分派) 선비들이 가급적 한양과 먼 곳으로 숨어들어가고자,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면서, 기후가 따뜻하고, 물산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인심이 후한 남도를 찾아 누정을 건립한 데에 연유한다. 송강정, 백운동 원림, 소쇄원 등 남도의 많은 누정은 이런 이유로 건립된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이유는 벼슬을 마친 선비가 노후 휴식의 퇴거(退去) 공간으로 건립한 누정이 그 것이다. 물론 이런 누정에서도 후진 양성을 위한 강학(講學)이 이루어졌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풍영정, 면앙정, 환벽당 등이 여기에 속한다.

 

4. 누정의 역할

누정은 주로 어떤 공간이었을까?

누정에서 선비들은 탁 트인 전망과 자연 풍광을 차경(借景)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

양성과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는 수양을 하는 곳이었다.

강학(講學)과 시회(詩會) 공간으로서 활용하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강학은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서당(書堂)이나 학당(學堂)을 비롯하여 향교(鄕校), 서원(書院), 성균관(成均館), 호당(湖堂) 등 교육의 전당을 통해서였다. 여기서 강학이란 딱히 성리서 등을 가지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시국을 걱정하고 향민(鄕民)의 여론을 주도하며 선현(先賢)을 추모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여 이른 말이다. 강학이나 시회는 주로 사대부 문인들의 참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흔히 문인계회(文人契會)라 한다.

누각과 정자 등 자연의 승지를 활용한 것이었다.

누각은 독서하며 공부하여 입신양명을 준비하던 곳이었지만, 이러한 곳의 참여로 시우(詩友)의 인연이 생기고, 그들과 시적 교유의 정의(情誼)가 깊어져, 시회(詩會)로써 서로의 두터운 사승(師承) 관계를 맺기도 했다. 정자는 흔히 유람취승(遊覽聚勝)이나 은일한거(隱逸閑居), 퇴식(退息)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강학을 하거나 시회(詩會)를 여는 등 시사(詩社)의 무대로 활용된 경우이다.

학자들의 만남의 공간이었다.

누정은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을 금방 알 수 있는 김언거, 송순, 임억령, 조수문, 조여심, 이황, 이이, 송익필, 기대승, 고경명, 임제, 김인후, 김성원, 정철, 임제 등이 시가(詩歌)로써 교유함은 물론 시국을 의논하고 학문을 논했던 장소였다. 이는 그들이 창작했던 경천동지(驚天動地)하고 폐부를 도려낼 듯한 주옥같고 절절하며, 풍류 낭만이 물씬한 시가 작품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누정은 강학, 곧 교육의 공간이었으며. 휴식 및 현자피세(賢者避世)와 재기의 공간, 지방자치와 중대 사안 결정 공간, 그리고 주민 교화 등 열리고 창조적 공간이었다.

창작적 사유 공간이었다.

누정을 열린 창조적 공간이라고 하거니와 이는 문학 작품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문학작품의 지리 공간은 3개의 층면(層面)을 가진다.

하나는 제 1공간 곧 원형 객관 존재로서의 자연 혹 인문지리 공간이 그 것이다. 이른바 담양 고서면에 있는 동강조대라는 누정은 본래 중국 절강성 동려(桐廬)의 동강(桐江) 칠리탄(七里灘)에 있는 곳으로, 그 곳은 동한(東漢)의 은자(隱者) 엄자릉(嚴子陵)이 낚시를 하며 세속의 명리를 초월했던 낚시 공간이다. 동한의 광무제와 친구였던 그는 황제가 적극적으로 정치를 함께 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그 것을 기어이 뿌리치고 은거했다. 엄자릉은 동강조대(桐江釣臺)에서 고기를 낚아 하루하루 겨우 목숨을 연명했다.

다른 하나는 작가의 지리 감지(感知) 능력과 지리 상상(想像)을 통하여, 문학 작품 속에 새롭게 창조해 낸 심미(審美) 공간, 자각(自覺)의 객관(客觀)과 주관(主觀)이 결합된 산물의 공간, 이를 제 2의 공간이라 부른다. 바로 담양의 조국성, 조국간의 형제가 창조해 낸 공간이 그것이다. 그 공간은 단순히 중국의 동강조대를 모방하거나 흠모하기 위함이 아니다. 두 형제가 나름의 심미 감각과 지리 감각, 상상 등을 동원하여 만들어 낸 창조적 공간이다. 두 형제는 엄자릉이 산수가 수려한 동강에 조대를 만들고 거기에서 낚시하며 세속의 명리를 초월한 것에 감동을 받아, 자신이 살고 있는 담양의 산수가 이름다운 곳을 엄자릉의 은거처에 비견해 볼 때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가졌다. 그래서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그 곳의 이름을 동강조대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동강조대가 생겨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동강조대가 중국의 아류나 모방이어서는 안 되는데 바로 그 점은 매우 중요하다. 엄자릉은 동강조대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낚시를 했지만, 위의 두 형제는 동강조대에서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는 효심(孝心)에서 낚시를 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중국의 동강조대와 한국의 동강조대가 다른 점이다. 이로 볼 때 어떤 누정은 다른 누정들이 건립되도록 영향과 자극을 줄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남도에 여러 누정이 건립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향을 준 누정이나 영향을 받아 건립된 누정의 성격은 세세한 점에서는 서로 다를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렇듯 제3의 공간은 누정을 방문하거나 누정에서 제작된 시문을 감상한 후 각자의 마음에 생겨난 심미적 공간으로서의 누정이다. 이 공간은 누정 건물이나 그 곳에서 창작된 작품을 넘어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아름다운 정서를 선사하고 무한한 울림의 감동으로 삶의 의의와 의미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한다.

 

5. 현대인과 누정

우리는 왜 지금 이 시점에서 누정을 들먹이고 있는 것일까? 그 것은 누정의 제3공간 기능 때문이다. 누정의 제3공간 기능이란, 다름 아닌 제2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창작행위(문학 행위, 서화 행위, 강학 행위, 토론 행위, 다도 행위, 우국 행위 등)의 영향이 미치는, 얼마든지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창작의 모태나 계기 등을 말한다. 달리 부연한다면 제2누정 공간에서 만들어진 문학작품(누정시, 누정기 등)을 읽고 난 후, 어떤 독자가 만들어낸,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만의 공간은 무궁무진하게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누정 공간의 개념을 통일의 공간, 인류 평화의 공간, 이상향 등 얼마든지 다른 공간으로 창조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제1공간과 제2공간 그리고 자신의 상상과 연상 등의 결합을 통하여 자기만의 고유한 공간인 제3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누정이 창의와 생산의 모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면서, 오늘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기도 한다.

문학 지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누정의 경관은 창조와 생산의 배경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경계를 자꾸 넓혀 가, 곳곳에 비슷한, 하지만 세세하게는 다른, 공간을 창조해 내는 힘을 가진다. 그 결과 자기 고향과 지역, 나라에 대한 사랑과 관심, 나아가 지역민과의 동질성을 가지는데 기여하고 자기 발전과 사회 진화, 국가 발전에 기여함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누정의 환경은 언어(言語)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감수성(感受性)을 정의하고 다듬는 힘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예리하고 깊게 다듬고 확장하는 역할도 한다. 이런 누정은 어떤 누정이 구체적인 상징을 가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 그 보다는 훨씬 더 고귀하고 드넓은 영역을 나타낸다. 아마도 당대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세워진 누정의 존재만으로도 정자의 주인이나 그 가문과의 동질성, 또는 일체감을 가지면서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전까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대해 관심을 돌리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며, 그 누정의 원운(原韻)(가장 먼저 지어진 시)에 대한 차운(次韻) 가장 먼저 지어진 시를 보고 그를 따라 지은 시)을 가속시켜 훌륭한 문학작품의 창작을 추동(推動)했음이 분명하다.

 

6. 새 천년 자산으로서의 누정

전라도 천년을 회억(回憶)하는 자리에서 누정의 제 3의 창조적 공간으로서의 활용과 생산성을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 전라도 곳곳에 유명무실한 애물단지로 퇴락해가고 있는 누정들, 우리는 이를 방치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전라도 천년을 있게 했던 그 누정의 공간들, 시향(詩香)과 예향의 자존을 세워주었던 누정들에 대하여, 앞으로의 수 천 수만의 역사를 이어 갈 창의의 모태인 누정에 대하여, 그의 활용 방안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하나의 방안으로 누정에서 창작된 명품 한시들을 동화, 동시, 또는 소설이나 수필로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다양하게 재생산, 확대, 유통시키는 일을 제안한다. 중국인이, 4대 명저니 고전이니 하여 다양한 종류로 명품을 유통하고 확대 재생산, 유통하는 노력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삼국지하나만을 가지고도 어린이용, 고등 학생용, 대학생용, 성인용, 만화본, 디지털본,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 활용, 유통시키면서 자국민의 동질성 강화와 자긍심 고취, 정체성 강화, 상상력과 창의성 제고, 경제성 도모 등에 활용하고 있다. 누정, 우리 전라도 새 천년을 그려 나아갈 창조적 공간이 되도록 활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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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 동아인문학회 회장

) 한국가사문학관 학술진흥위원회 위원장

) 전남문화재 위원

) 한국시가문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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