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 나의 장애인관 - 이순자 | |
작성일 : 2021-08-24 조회 : 221 | |
유아교육과 나의 장애인관
근래 유아교육 현장 교사들이 유아지도와 관련하여 어려움과 우려를 표출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재원 유아들 중 장애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발달이 지연된 유아, 혹은 병원이나 사설센터를 방문해 볼 것을 권유하기에는 그 정도가 덜 심각한 경계선에 선 부적응 유아, 즉 장애위험 영유아들이 전보다는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여러 연구들(김태인, 2003; 배민정, 2020; 박현옥, 이정은, 2007, 최선경, 2019; Campell & Ewing, 1996)에서 장애위험 영유아의 증가 추세를 밝혀주고 있기도 하다. 더 나아가 장애인구도 증가추세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장애위험 유아나 장애유아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특수교사가 아니어도 장애유아를 내 반에 받아들여 통합교육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여러 여건 상 교사가 겪는 어려움이나 마음쓰임은 일반유아들을 지도할 때보다 더 클 수 가 있다. 한 연구에서 장애위험 영유아가 증가추세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교사들에게 물어본 결과, 부모의 양육태도를 포함한 ‘환경적인 요인’과 전문기관, 사설기관에서 ‘상담이나 치료받는 영유아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음’을 많이 들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장애위험 영유아 및 장애유아 증가 추세의 이유와 원인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예비유아교사를 포함한 우리 유아교육자들이 이들에 대한 인식과 수용태도 및 지도역량을 갖추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 나의 장애인관은 어떠한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 및 그들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람직하지 않고 건전하지 않을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없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장애인들에게 보이는 관심과 태도, 장애인에게 부여하는 인간적인 가치, 인식이 장애인의 사회적응과 교육 및 복지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장애인관’ 즉, 장애 또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학자 및 관점에 따라 다양하지만, 간단히 첫째, ‘동정의 대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 둘째, ‘사회적 상황이 장애를 발생시킨다는 시각’, 셋째,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로 보는 시각’의 세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각은 박애주의적 입장에서 장애인을 자립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보호와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거나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면적으로는 이들을 거부하거나 이들에 대한 비호의성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 두 번째 시각은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장애라 느끼지 못하는데 주변 사람들의 측은하게 혹은 두렵게 느끼는 것에 따라 행하여지는 활동들에 의해 어느 덧 사회적으로 장애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장애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여건이나 상황에 의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세 번째 시각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로 보는 것으로서 장애인이 갖고 있는 손상보다는 잔존능력에 주목하는 장애인관이다. 여기에서 장애인관에 관한 모든 것을 논하기 어렵지만,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장애인관은 서양사상의 관점에서 장애의 현상과 기능적인 면에 초점이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 또는 장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현상이나 외양에 따른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동양사상 중 율곡의 철학사상인 일원론적인 관점에서의 장애 및 장애인관은 장애인과 정상인이라는 절대적인 구분은 있을 수 없다. 장애란 삶의 과정 속에 융해되어 있는 인간 이해의 한 단면이며 변화하는 동(動)의 모습이 근본적인 가치이다. 따라서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실체로서만이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즉 변화의 요소인 시간의 흐름을 장애의 정의에 포함시켰을 경우, 장애란 단지 현상에 나타나는 기능적·정서적으로 제한된 능력에 따른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기운 생동하여 변화하는 실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기운 생동하는 실체로서의 무한한 가능태를 지닌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가능태는 현실적 삶의 과정 속에서 상대적 가치 체계로서 주체와 객체라는 양면성을 지니는 존재가 되는데 이를 현실적 존재라고 한다. 이는 곧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 가능태를 지니고 있는 현실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을 할 수 없다’라는 사유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실체로서의 장애의 정의는 ‘∼를 할 수 없다.’가 아니라 ‘∼를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가능태로서 장애를 정의하게 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의 장애관을 제시 할 수 있다. 즉, 장애를 잠재적 가능태로 정의할 때, 장애라는 잠재적 가능태를 현실에 실현하는 정도에 의해 정상이라는 사유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정상이라는 사유는 본질적으로 장애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애와 정상이라는 절대적인 이분이 아닌 상보적 관계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단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장애는 진정한 의미의 장애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율곡 사상의 일원론적 관점에서 장애와 정상은 함께 존재하게 되는 것이며 장애라는 것은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것이 된다. 곧 장애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있는 개별적인 것이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소파 방정환의 아동관 및 교육사상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소파 방정환이 본성적 측면에서 아동의 세계를 인정하고 아동의 어림과 미성숙은 계몽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고 ‘크게 자라날 어림,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 인 잠재 가능성, 성장 가능성으로 본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애인을 가능태로서 ‘∼할 수 있는’ 존재로써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즉 장애인을 현실적 존재로서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능태를 현실화시키는 자기 구성 활동 중에 있으며, 타자의 현실화 과정 속에서 여건이 될 수 있는 가능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가진 존재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아교육자인 우리는 교육의 대상인 ‘유아’에게 포커스를 두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자신에게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나는 장애위험 영유아, 혹은 장애유아들을 내가 가르쳐야 할 교육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가?”, “착석이 잘 안 되고 공격성을 보이는 유아가 있을 때, 그 아이의 현재의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라 앞으로의 ‘할 수 있음’을 먼저 볼 줄 아는가?”, “부모가 아이의 발달지연 및 부적응상태나 장애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교사에게 신뢰를 보이지 않을 때, 조기개입의 중요성과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부모를 설득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등. 즉 내가 생각하는 유아교육은 유아특수교육을 품고 있는가?... 21세기의 주역이 될 우리 아이들이 각자가 지닌 다양성을 존중하고 장애를 지닌 또래, 다문화 가정의 친구 등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리 교사들이 해야 할 당위적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즉 교사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교육신념(아동관)이나 자신 안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어떤 편견의 영역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반성적 사고를 하는 것이 그 일 수행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특수교육학부(특수유아교육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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